심리학에는 '의지력 총량의 법칙'이라는 이론이 있다. 의지력 총량의 법칙이란 한 개인이 쓸 수 있는 의지력의 양은 한정되어 있어서 제한된 양을 모두 쓰고 나면 더 이상 의지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이론이다.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이 법칙은 꽤 잘 맞는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의지력 박약을 탓하며, 하루 종일 공부하거나,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의지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우울증이나 번아웃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의지력은 어느 정도 조절 가능하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비슷한 강도의 일을 하더라도 하루 종일 공부나 일을 하는 것보다 게임을 하는 것이 덜 힘들고 오히려 즐겁게 느껴지는 것처럼 의지력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의지력이 고갈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의지력 총량의 법칙이 확실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의지력은 한정되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의지력이 빠르게 고갈되는 경향도 있다.
의지력 총량의 법칙은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심리학 이론이다. 하지만 최근 여러 학자가 이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 이론에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한 인물은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의 에번 카터 교수였다. 카터 교수는 2010년, 의지력 총량의 법칙은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논문, 약 200편을 검토했다. 그런데 그와 상반되는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발행되지 않는 '발행 편향 현상'(특정 이론이 옳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다른 이론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는 현상) 이 관찰되었다. 결국, 그는 의지력 총량의 법칙을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2011년 심리학자 로이 F. 바우마이스터와 존 티어니는 의지력 총량의 법칙을 뒷받침하는 책 <의지력의 재발견>을 출간했다. 그들은 한 실험을 통해 의지력이 고갈된 사람에게 설탕을 먹이면 의지력이 회복되기도 한다는 현상을 목격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설탕이 들어간 레모네이드를 먹이자, 어려운 과업을 수행할 때, 자제력과 지구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들의 수행 능력을 향상한 요인은 레모네이드의 설탕이 아니라 의지력이 회복되었다는 그들의 믿음이었다.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인 셈이다. 환자에게 아무 효능도 없는 가짜 약을 주어도 환자가 그 약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 건강이 회복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과 그의 동료들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자아 고갈 현상은 의지력이 유한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난다고 결론 내렸다.
이와 관련된 실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흡연자가 담배 속의 니코틴 때문에 담배를 피우고 싶어 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니코틴이 중독성이 강한 물질인 것은 맞지만 다음 실험을 통해 흡연 욕을 일으키는 것은 니코틴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평소 담배를 피우는 두 그룹의 승무원을 이스라엘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시켰다. 한 대는 총 3시간이 소요되는 유럽행, 다른 한 대는 총 10시간이 소요되는 뉴욕행 비행기였다. 연구진들은 이들에게 이륙하기 전부터 착륙할 때까지 정해진 시간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강도를 기록해달라고 말했다. 흡연 욕이 니코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었다면 3시간이 소요도는 유협행 비행기에 탑승한 승무원보다 10시간이 소요되는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한 승무원이 착륙했을 때 더 강한 흡연 욕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유럽에 막 도착한 승무원들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강한 흡연 욕을 느꼈다. 하지만 같은 시각, 대서양 상공에 있는 뉴욕행 비행기의 승무원들은 흡연 욕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비행기가 착륙한 후에야 강한 흡연 욕을 느꼈다. 즉, 흡연 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니코틴뿐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의 흡연 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고 몇 시간이 지났느냐가 아니라, 다시 담배를 피울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남았느냐였다. 즉, 유럽행 비행기의 승무원들은 조금만 있으면 담배를 피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흡연 욕을 강하게 느꼈지만, 뉴욕행 비행기의 승무원들은 어차피 한동안 담배를 피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흡연 욕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셈이다. 그리고 그들도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서야 흡연 욕을 느낀 것이다. 즉,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의지력이 고갈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뜻이다.
의지력 총량의 법칙은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심리학 이론이다. 그러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 이론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의지력은 유한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서 일정량 이상의 의지력을 발휘하면 자아 고갈 현상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의지력을 좌우하는 것은 의지력의 총량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일 수 있다. 우리는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의지력 총량의 법칙에서 벗어나, 더 많은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도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다면 한계를 돌파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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