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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재밌는 지식들

미국 대학 등록금이 비싼 진짜 이유: 유에스 뉴스의 엉터리 대학 서열이 만들어낸 비극

by 어쨌든 독서가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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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학교의 등록금은 비싸기로 악명 높다. 2021년 기준, 미국에서 가장 등록금이 비싼 대학교는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로 1년 등록금이 자그마치 6만 1850 달러(8천8백만 원)이고, 기숙사비와 각종 생활비까지 합치면 거의 10만 달러(1억 3천만 원)에 달한다. 한인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는 UCLA 주립대는 캘리포니아 거주자의 경우, 1만 6659 달러(2천300만 원), 타주 거주자나 외국인 학생들의 경우 4만 7680 달러(6천700만 원)이다. 한국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700만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런데 미국 대학 등록금은 왜 이렇게 비싸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유는 미국의 2류 시사 주간지가 만들어낸 엉터리 대학 서열 때문이다. 대학 서열을 매길 때,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등록금이나 학자금 지원이라는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대학 관계자들은 다른 요소들에만 신경 쓰고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올린 것이다.

1983년, 미국의 2류 시사 주간지 <유에스 뉴스&월드 리포트>는 야심 찬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다. 미국에 존재하는 단과 대학과 종합 대학을 통틀어 180여 개에 이르는 대학교들을 평가하고, 우수성에 따라 순위를 세우는 계획이었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미국의 수백 만에 이르는 젊은이들은 자기가 진학할 대학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첫 해에는 스탠퍼드 대학교가 전국 대학 중 1위를 차지했고, 인문대학 중에는 애머스트 칼리지가 최고 대학으로 꼽혔다. 그런데 이 결과가 신뢰할만할까? <유에스 뉴스>는 얼마나 객관적인 정보를 근거로 대학 순위를 매긴 것일까? 처음에는 대학 총장들에게 발송한 설문조사지의 결과만을 근거로 순위를 매겼다.

  대학 서열 세우기 프로젝트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 결괏값은 단순히 설문조사지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상당수의 대학 행정관들은 순위가 불공정하다며 불평했다. 난처한 입장에 처한 <유에스 뉴스>는 순위의 공정성을 담보할 데이터를 더 조사해야 했다.

  <유에스 뉴스>는 대학 교육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보고, 그 변수 중에서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한 다음, 대학 순위 공식에서 각각의 변수에 얼마만큼의 가중치를 부여할 것인지 결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 역시 대부분 직감에 의존했을 뿐, 매우 비과학적이고 통게적 근거도 희박했다.

  한 대학교의 교육의 우수성을 평가할 마땅한 지표를 찾는 건 매우 까다로웠다. 수천 만의 학생은 고사하고, 대학 교육이 학생 한 명에게 미치는 영향조차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유에스 뉴스>는 교육의 우수성과 상관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리 데이터'를 사용하기로 했다. 먼저 SAT 점수와 학생과 교수자의 비율, 입학 경쟁률을 분석하고, 신입생 잔류율, 동문들이 모교에 기부하는 비율을 분석하고 계산했다. 이런 식으로 나온 계산 결과가 대학 총점에서 75%의 비중을 차지했고, 나머지 25%는 대학 관계자들의 주관적인 의견이 반영됐다.

  이런 대리 데이터로 이루어진 모형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다. 조작되기가 쉽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포털 사이트에서 어떤 블로그의 콘텐츠를 상위 노출시킬지 결정할 때, 블로그의 구독자 수를 우선적으로 반영한다면 이는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 근거가 될지도 모른다. 블로그의 구독자 수가 많을수록 그 블로그의 신뢰도가 높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콘텐츠에는 신경 쓰지 않고, 블로그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 서열을 매길 때, 그 학교의 입학자 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학교는 다른 것은 신경 안 쓰고 대학 입학자 수만 늘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처럼 대리 데이터로 이루어진 모형은 조작될 위험성이 크다.

  <유에스 뉴스>가 대학 서열을 매길 때 사용한 데이터에는 수업료와 제반 학비, 학자금 지원 등의 요소가 빠져 있었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많은 미국의 대학교들은 자기 대학의 순위를 올리기 위해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올리고, <유에스 뉴스>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만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등록금이 터무니없이 비싼 대학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위권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불안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교육비를 과도하게 지출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대학교 관계자들에게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책임을 전부 <유에스 뉴스>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유에스 뉴스>가 엉터리 지표를 만든 건 사실이지만 그걸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따른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유에스 뉴스>의 지표를 비판했다면 <유에스 뉴스>도 자기 지표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수정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유에스 뉴스>도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또 순위가 높은 대학의 졸업장이 사회적인 특권과 명성을 안겨주지라는 사회적인 믿음도 잘못됐다. 아무리 좋은 대학교 졸업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력이 없으면 사회에 나가서 큰 일을 해내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고, 대학교들도 서서히 등록금을 낮추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는 주변 환경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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