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인구수 대비 죄수의 비율이 유독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2016년 기준, 미국의 인구수는 전 세계 인구수의 5%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죄수 인구수는 전 세계 죄수 인구수의 25%를 훌쩍 넘는다. 그리고 미국인 중 흑인의 비율은 6.5%에 불과하지만 범죄자 중 흑인의 비율은 무려 40.2%도 넘는다. 그렇다면 몇십 년째 GDP 1위로 군림하고 있는 초강대국 미국에 왜 이렇게 범죄자가 많은 것일까? 또 범죄자 중 흑인의 비율은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에 범죄자가 많은 것은 범죄를 근절하겠다는 목적으로 지나치게 가벼운 범죄자들까지 철저히 단속하고 있기 때문이고, 범죄자 중 가난하거나 흑인인 사람이 많은 것은 가난한 동네에서 경범죄가 자주 발생하다 보니, 경찰이 가난한 동네만 집중적으로 순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미국의 한 소도시가 도입한 '범죄 예측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소도시인 레딩은 탈공업화 시대에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필라델피아에서 서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구릉지에 위치한 소도시, 레딩은 철도, 철강, 석탄, 섬유를 기반으로 경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탈공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몇십 년간 도시의 경제를 책임져주었던 주요 산업들이 급격히 쇠퇴하였고, 레딩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국 2011년에 레딩은 빈곤율이 무려 41.3%에 달해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라는 오명을 썼다. 게다가 2008년에 일어난 금융위기로 인한 불경기는 레딩의 경제를 더욱 나락으로 빠뜨려 세수를 크게 감소시켰다. 결국 레딩의 재정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경찰 인력을 45명이나 감축하고 말았다.
당시 레딩의 결찰서장이었던 윌리엄 하임에게는 엄청난 숙제가 주어졌다. 경찰 인력을 줄이더라도 치안의 공백이 생기지 않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한 가지 묘수를 찾아냈다. 2013년 하임 서장은 캘리포니아의 산타크루즈에 있는 빅데이터 스타트업, '프레드풀'이 개발한 범죄 예측 소프트웨어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은 시의 범죄 통계 데이터를 토대로 시간대별로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예측했다. 계산된 결괏값은 컴퓨터상의 지도에 사각형 모양으로 표시되었다. 이런 식으로 도출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범죄 발생률이 높은 지역을 순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면 경찰 인력을 줄이고도 범죄율을 크게 높이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지 1년 만에 레딩 시의 강도 사건이 무려 23%나 감소하는 성과를 얻었다. 이런 성과는 미국 전역에 빠르게 알려져서 현재는 미국 전역에서 이와 비슷한 범죄 예측 프로그램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범죄 예측 프로그램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후에 적발된 범죄자는 대부분 중범죄자가 아닌 경범죄자였다는 점이다. 가난한 동네에서 경미한 범죄는 흔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범죄 예측 프로그램은 가난한 동네에 범죄 발생률이 높다고 판단했고, 많은 경찰이 가난한 동네에만 집중적으로 순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가난한 동네에서 경범죄자가 많이 체포되면 범죄 예측 프로그램은 점점 더 가난한 동네에 범죄 발생률이 높다고 판단할 것이고, 점점 더 많은 경찰이 가난한 동네에 투입될 것이다. 또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은 흑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국에는 범죄자 수도 많고, 그중에는 가난하거나 흑인인 사람이 많은 것이다.
왜 미국 경찰은 경범죄자들까지 철저히 단속하는 걸까? 이는 1982년,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랜틱 먼슬리>에 발표된 '깨진 유리창 경찰 활동'에 대한 논문 때문이다. 경범죄와 일탈적 범법 행위가 무질서한 환경을 조성하면,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들이 그곳을 떠나게 되고, 그들이 빠져나간 텅 빈 지역은 중범죄의 온상이 되기 쉽다. 그래서 사회 전체에 무질서가 확산되기 전에 경범죄를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1990년대에 들어 무관용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미국 경찰들은 굳이 체포하지 않아도 되는 경범죄자들까지 철저히 단속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인 만큼 예전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 가난하거나 흑인인 범죄자가 많은 것은 누군가가 악의를 갖고 고의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다. 잘못 설계된 알고리즘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엄청나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가난하거나 흑인인 사람은 불결하거나, 악하다는 인식이 퍼지기 쉽고, 이는 빈부 격차와 인종 차별이라는 문제를 극대화시킬 것이다. 또 안 그래도 가난한 사람이 한 번 체포되고 나면 범죄자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닐 것이고, 이로 인해 앞으로 취업하기도 어렵고,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실수라도 방치하면 전국적인 사회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우리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문제를 예방하여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캐시 오닐의 책 <대량 살상 수학 무기>를 참고하여 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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