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듣기 싫은 노래가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맴돌고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도저히 멈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왜 듣고 싶지도 않은 노래를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는 걸까? 여기에는 심리학적인 이유가 있다. 인간은 완성되지 않은 것에 대해 계속해서 떠올리고, 기억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부른다. 즉, 우리는 어떤 노래를 듣다가 말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노래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노래를 끝까지 들으면 자이가르닉 효과는 사라지고, 노래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자이가르닉 효과는 왜 발생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이가르닉 효과는 무의식이 의식에게 아직 완료되지 않은 일을 끝마칠 계획을 세우도록 요구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무의식이 계속해서 의식에게 끝마치지 못한 일에 대해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나면 자이가르닉 효과는 사라진다. 이제부터 자이가르닉 효과는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1920년대 중반, 두 심리학자는 독일, 베를린 대학교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신기한 현상 하나를 목격했다. 대학 관계자 여러 명이 식당에서 한 명의 웨이터에게 점심을 주문했는데, 웨이터는 이들의 주문을 전혀 메모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주문한 음식은 정확하게 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웨이터의 뛰어난 기억력에 감탄했다. 그런데 어떤 손님이 자리에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는 웨이터의 기억력이 뛰어나니 그가 분명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웨이터는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 손님은 이렇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전부 잊어버릴 수 있는지 물어봤고, 웨이터는 음식이 나와 서빙할 때까지만 기억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러시아의 심리학과 학생이었던 '블라마 자이가르닉'과 그녀의 스승이자 영향력 있는 사상가 '쿠르트 레빈'은 이러한 일화가 어떤 심리학 원칙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인간의 기억력이 완성된 일과 완성되지 않은 일을 명확하게 구분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피실험자들에게 조각 맞추기 퍼즐을 풀게 하고, 도중에 작업을 방해하며 그 반응을 관찰했다. 이 연구를 비롯한 수십 년 간의 실험을 통해 '자이가르닉 효과'가 입증되었다. 인간은 끝마치지 못한 일에 대해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어 기억력이 올라가는 듯한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완성하고 나면,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진함은 사라지고, 기억력도 원상태로 돌아간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심리학자들은 왜 자이가르닉 효과가 일어나는지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여러 가지 이론을 제기해왔다. 첫 번째 가설은 무의식은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따라다니는 경향이 있어서 일이 완성될 때까지 이런 생각의 실마리를 놓지 말라고 무의식이 압박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의 소매를 당기면서 도움과 관심을 요구하듯이 무의식이 의식에게 일을 끝마치도록 재촉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곧 추가적으로 이루어진 실험들에 의해 두 가지 가설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을 밝혀졌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자기 삶에서 중요한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한 집단에게는 최근 끝낸 임무에 대해 적도록 했고, 다른 집단에는 아직 완성하지 못했지만 곧 끝마쳐야 할 일에 대해 적도록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집단에게는 완성하지 못한 임무에 대해 적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끝마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어떤 소설의 첫 장부터 10쪽까지 읽는 과제를 주었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집중하는지 주기적으로 관찰했다. 집중을 얼마나 잘했는지 물어보고, 만약 집중하지 못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었고, 그들이 소설의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도 확인했다.
실험 결과, 완성하지 못한 과제를 적기만 한 피실험자들은 과제를 완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적은 피실험자들에 비해 소설에 대한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구체적인 계획까지 적은 피실험자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이 잘 흐트러지지 않았고, 소설의 내용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즉, 과제를 떠올렸지만 계획을 세우지 않은 피실험자들에게는 자이가르닉 효과가 계속 남아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피실험자들에게는 자이가르닉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위 실험을 통해 자이가르닉 효과는 무의식이 의식에게 계획을 세우도록 요구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의식에게는 스스로 무언가를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무의식은 의식에게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그리고 방법에 대한 계획을 세우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완성되지 않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떠올리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계획을 세워놓으면 무의식은 더 이상 의식에게 독촉하지도, 잔소리하지도 않으므로 자이가르닉 효과는 사라진다.
이 글은 책 <의지력의 재발견>을 참고하여 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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