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좋아도 우승할 수 없다?! : 피아니스트들은 왜 가만히 있지 않을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볼 때면 점차 연주를 따라가기가 힘들어짐을 느끼곤 한다. 연주보다 그들의 몸짓에 더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높은 음을 칠 때는 과장되게 몸을 뒤로 젖히고, 손가락을 건반의 공중으로 띄워 마구 꼼지락 거리는 등의 행위를 한다. 그들이 이런 허세를 부리는 데는 심리학적인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연 대회에서 심사위원은 철저하게 참가자의 실력만 보고 심사할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 연구 결과,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부분의 심사위원은 연주 자체가 아니라 연주하는 모습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표가 매진될 정도로 관객을 많이 불러올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뛰어난 실력을 갖춤과 동시에 뛰어난 음악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피아노 경영 대회는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차쥥차이' 교수는 프로 음악가와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클래식 경연 대회에서 결선에 오른 세 명 중 누가 우승할지 예상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한 집단에게는 연주 소리만 들려주었고, 다른 집단에게는 연주 오디오와 비디오를 함께 보여주었고, 나머지 집단에게는 소리 없이 비디오만 보여주었다. 만약 경영 대회에서 오로지 실력을 근거로 평가가 이루어졌다면 소리만 들은 집단이 우승자를 가장 잘 예측할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놀랍게도 승자를 맞출 확률이 가장 높았던 집단은 소리는 끄고, 비디오만 본 집단이었다. 이 집단이 우승자를 맞출 확률은 무려 50%였다. 소리만 들은 집단이 우승자를 맞출 확률은 고작 25%에 불과했다. 세 명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였음을 감안하면, 그냥 찍은 것보다도 못한 확률이었다. 소리는 끄고 비디오만 본 집단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연주자의 화려한 몸짓만 보고 누가 우승할 것 같은지 예측했다. 반면 비디오는 끄고 소리만 들은 집단은 철저히 연주 소리만 듣고 그들의 실력을 판단했다. 그런데 소리는 끄고 비디오만 본 집단이 더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는 것은 경영 대회의 심사위원도 참가자의 연주 실력보다는 그들의 몸짓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표가 매진될 정도로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월등한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가 아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춤과 동시에 뛰어난 음악가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뛰어난 선수들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뛰어난 사람과 형편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피아노 경영 대회의 결선까지 오른 사람들은 모두 출중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그래서 심사위원은 그들의 연주 실력보다 비교적 판단하기 쉬운 그들의 겉모습을 근거로 순위를 매긴 것이다.
  이는 피아노 경연 대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회사에 입사할 때도 면접관은 사람을 순수하게 실력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특히 면접관은 하루 종일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므로 후반부로 갈수록 지쳐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어떤 면접관은 그 사람이 분홍색 양말을 신었다는 이유로 그를 채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면접을 보고 나니 선명한 분홍색 양말이 눈에 확 띄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심사위원은 사람들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때는 어쩔 수 없이 비교적 비교하기 쉬운 그들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쟁은 생각보다 공정하지 않는다. 쇼핑할 때 처음에는 까다롭게 따져가며 물건을 고르지만 결국에는 지쳐서 제일 싸거나 유명한 물건을 고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사실은 세상이 생각보다 공정하지 않다는 뜻인 것 같아서 조금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고의로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이해해줘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실력뿐만 아니라 겉모습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