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 경연대회'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클래식 음악 경연대회이다. 이 경연대회는 1937년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클래식 스타들을 배출해왔다. 처음에는 바이올린에서 시작되었지만 곧 피아노, 성악, 첼로, 작곡으로 경연 분야가 넓어져 왔다. 바이올린 경연대회의 수상자는 엄청난 상금을 받을 뿐만 아니다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탐내는 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를 4년 동안 빌려 쓸 수 있게 된다. 권위 있는 이 경연대회의 수상자는 유수의 공연장에서 공연할 길이 열리고 세계 곳곳에서 수입이 짭짤한 음반 계약이 쇄도한다.
권위 있는 경연대회인 만큼 공정한 판정을 위해 많은 규칙이 존재했고, 오래전부터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한 연구 결과를 통해 이러한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심사위원들은 심사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편견을 갖거나, 공정성을 더하기 위한 절차가 역으로 공정성을 해치는 쪽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 경연대회에서는 공정한 판정을 위해 다음 두 가지 규칙을 만들어 놓았다. 첫째로 결선까지 진출한 연주자들은 이 경연대회를 위해 특별히 작곡된 협주곡을 연주하게 된다. 미리 준비해둔 곡을 연주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둘째로 결승전이 열리는 주에는 매일 밤마다 두 명의 후보가 배정받은 순서대로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즉석으로 평가를 받는데 심사위원들은 한 번 점수를 제출하면 수정할 수 없고, 서로 의논하지도 못한다. 이는 각각의 심사위원들이 서로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다. 그런데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절차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두 명의 경제학자가 이 경연대회의 지난 약 40년 간 기록을 살펴봤더니 뜻밖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경연대회의 우승자 중 첫날에 연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둘째 날에 연주하고 우승한 사람은 겨우 두 명이었고, 마지막 날 연주하고 우승한 사람은 한 명이었다. 나머지 여덟 명의 우승자 중 절반은 다섯째 날에 연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데이터를 두고 통계학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이 현상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이 경연대회는 사실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로 이 경연대회는 공정한 판정을 위해 모든 참가자들에게 똑같은 협주곡을 연주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협주곡은 바이올리니스트와 심사위원 모두에게 생소한 곡이다. 악보만 보고 연주를 제대로 심사할 수 있는 심사위원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결선에서 첫 번째로 연주하는 연주자를 통해 그 곡을 처음으로 듣게 되고, 결선이 끝나감에 따라 곡에 익숙해진다. 두 번째로 이 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은 한 번 내린 판결을 수정할 수 없다. 그래서 첫 연주자의 연주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연주자에게 최고 점수를 주지 못한다. 첫 연주자에게 최고 점수를 주었다가는 나중에 더 뛰어난 연주자가 등장했을 때 궁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심사위원들의 점수가 후해지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경쟁에는 공정을 기하기 위한 수많은 장치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장치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오히려 공정한 심사를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퀸 엘리자베스 경연대회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경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일 것이다. 취업 면접을 볼 때도 오전 면접자는 오후 면접자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러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건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고의를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보니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팁을 얻을 수 있다. 어떠한 종류의 경쟁을 하든 순서를 미룰 수 있는 한 최대한 미뤄야 한다는 점이다.
참고할 만한 글
'어쨌든 재밌는 지식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력보다 이름값이 중요하다?! : 실력이 좋아도 유명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0) | 2022.11.17 |
---|---|
성공은 합격이 아니라 불합격한 학교에 달려 있다고?! : 학교보다 야망이 중요하다 (2) | 2022.11.15 |
평가가 많으면 별점이 산으로 간다? : 인기 있는 상품을 구매하면 안 되는 이유 (0) | 2022.11.12 |
실력이 좋아도 우승할 수 없다?! : 피아니스트들은 왜 가만히 있지 않을까? (2) | 2022.11.10 |
명문 학교에 입학할 필요가 없는 이유 : 학교보다 능력이 중요하다 (2) | 2022.1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