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현재 인류는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심리는 전혀 풍요로운 것 같지 않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이번에 소개할 책, <최선의 고통>은 이 질문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폴 블룸은 자신의 저서, <최선의 고통>에서 고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몰입을 선사하는지, 고통을 인생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등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이 책을 읽으면 사람들이 너무 편리함만을 좇다 보니 고통에서 오는 의미도 잃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1. 고통은 어떻게 쾌락이 되는가?
우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차이에 반응한다.
-<최선의 고통> 2장 중-
어떤 일이 즐거운 이유는 그것이 과거의 경험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미래의 경험과 극도의 대비를 만들기 위해 일부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열탕에 들어가는 이유는 열탕의 따끔거림은 열탕에서 나왔을 때 느껴질 기분 좋은 쾌락을 느끼기 위해 참을 만하기 때문이다. 매운 카레의 화끈함은 뒤이어 맥주를 마실 때 느껴질 상쾌함을 위해 참을 만하다. 마찬가지로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은 더없이 맛있고, 피곤할 때 소파에 들어 누우면 너무나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현상이 모든 고통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지속 시간이 짧아야 하고, 그 피해가 너무 심각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화상을 입은 후,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면 쾌락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뜨거운 냄비를 잡았을 때의 고통을 보상할 만큼 좋지는 않다. 화상의 고통은 지속 시간이 길고 피해도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시시대의 인간은 자신이 위험한 일을 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 고통이라는 감각을 진화시켜 왔다. 만약 모든 고통이 뒤이어 찾아올 쾌락을 위해 참을만하다고 느껴진다면 그런 인간은 절대 번식할 때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존에 위협이 될 만큼 심각한 피해를 안기지 않는 고통에 한해서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2. 고통이 가치 있어지는 순간
노력은 노동의 산물이 지니는 가치를 높인다.
-<최선의 고통> 4장 중-
기쁨을 안기는 대상을 얻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면 곧 고통 자체가 기쁨을 안기게 된다. 이케아 효과는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사람이 만든 물건보다 자신이 만든 물건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원칙이다. 1950년대에 즉석 케이크 믹스가 출시되었을 때 가정 주부들은 케이크 만들기가 너무 쉬워졌다며 그 제품을 거부했다. 나중에 제조사들이 달걀을 하나 추가하도록 레시피를 바꿨더니 즉석 케이크 믹스의 인기가 갑자기 높아졌다.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들여서 얻은 물건일수록 더 가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활동들은 고통을 많이 겪을수록 괴로워질 뿐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활동들은 고통을 많이 겪을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놀이나 게임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미없거나 무의미하거나 더 나은 일이 있다고 느끼면 피로와 권태를 느낀다. 이런 경우에는 일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많이 느낄수록 괴로워질 뿐이다. 하지만 일을 완수하는 과정이 놀이나 게임처럼 느껴지면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게 되어 많은 노력을 들일수록 그것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게임이 아닌 것을 게임처럼 만들면 그 일을 하도록 동기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3.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가장 의미 있는 사건들은 아주 즐겁거나 고통스러운 극단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
-<최선의 고통> 5장 중-
많은 종교나 단체에서는 구성원들에게 관행적으로 의미 없어 보이는 활동을 시키기도 한다. 이런 관행들은 사람들을 단결시키기 때문이다. 고도의 고통을 주는 관행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더 사랑하게 되며 그 결과 더 관대해진다.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일수록 더욱 집단 지향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심지어는 그런 활동에 참가하지는 않고 지켜보기만 한 사람들에게도 같은 효과가 일어난다. 또한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큰 고통이나 고난을 견뎌야 할 때 기부를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의미 있고 보람차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는 비자발적으로 고통을 겪을 경우에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자발적인 고난을 대단히 보람차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 비자발적인 고난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발적 고난이 주는 즐거움은 놀이의 형태를 띨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자발적 고난은 놀이처럼 느껴질 수도 없고, 보람차게 느껴질 수도 없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놀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모든 고통이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고통스러운 행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대인은 물질적으로는 큰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심리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이 편리함만을 좇다 보니 고통에서 오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하거나 우울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폴 블룸의 책, <최선의 고통>을 추천한다.
최선의 고통, 굵고 짧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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