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에는 바다에 사는 해마를 닮은 기관이 뇌 한가운데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해마는 기억을 하나로 묶어 기억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해마는 뇌의 여러 부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개별적인 정보들을 한데 모아 나중에 한꺼번에 불러올 수 있도록 하나의 연관된 데이터 단위로 만들어낸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정보 단위는 적절한 상황에 기억이라는 형태로 떠올려질 수 있다. 즉, 우리에게 기억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해마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능력에 장애가 생긴다. 알츠하이머병 역시 해마를 공격하여 기억 능력에 심각한 장애를 유발한다. 그런데 만약 인간에게 해마가 아예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다. 다음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반 세기가 넘도록 수천 편의 논문에서 소개된 헨리 몰래슨은 신경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간 교과서이다. 헨리는 어렸을 때 자전거에서 떨어져 두개골에 심각한 골절상을 입었다. 이때 입은 부상 때문 헨리는 열 살 때부터 몸이 망가질 정도로 심각한 뇌전증 발작을 자주 일으켰다. 결국 1953년 9월 1일 당시 27세였던 헨리는 이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뇌수술을 포함한 실험에 참가하기로 동의했다.
그 당시의 권위 있는 신경외과 의사들이 이 수술을 집도했다. 신경외과 의사였던 윌리엄 스코빌은 헨리의 발작을 치료해 주기 위해 리의 뇌에서 해마와 그 주변 조직을 제거했다. 수술 결과, 헨리의 발작은 완벽하게 치료되었다. 헨리의 성격, 지능, 운동 및 언어 기능, 인지 능력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뇌전증 대신 다른 심각한 질환을 겪게 되었다. 헨리는 82세로 사망할 때까지 새로운 정보나 경험을 몇 분 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해마는 기억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매우 중요한 기관이기는 하지만 해마가 없다고 해서 전혀 기억을 만들 수 없는 건 아니다. 기억은 해마에 도달하기 전에 작업 기억이라는 형태로 의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나 어젯밤은 물로 1분 전의 일도 작업 기억에 머무를 수 없다. 우리가 지금 경험한 것은 15~30초 정도 동안 작업 기억에 보관되고, 작업 기억은 해마가 아닌 전전두피질에 저장된다. 그래서 해마가 없었던 헨리도 자신의 전전두피질을 이용하여 작업 기억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 글은 리사 제노바의 책, <기억의 뇌과학>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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