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를 줬지만 행복을 뺏어간 자본주의
자본주의로 인해 인류가 크게 발전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인류는 과연 얼마나 행복해졌을까요?
우리나라는 20세기 후반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과거에 비해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당신이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돈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일종의 종교와 같습니다.
기독교 신자는 예수를 믿고 불교 신자는 부처를 믿는 것처럼 자본주의 신자는 돈을 믿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신자는 돈을 믿습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많이 소유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과도한 소유는 당신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신자인 당신은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겁니다.
돈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사람은 '자본주의의 광신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류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건의 배경에는 항상 돈이 있었습니다.
'공금을 횡령하는 정치인', '환자에게 과잉진료를 하는 의사', '뇌물을 받는 공무원' 등.
그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잘못된 일을 저지릅니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쾌락이 클수록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간적인 쾌락으로 이어지지는 일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것을 실현함에 따라 당신도 성장할 수 있는 일들이 당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자본주의를 맹신하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돈을 위해 살아라!
자본주의는 종교다
현대 문명이 이뤄질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종교'입니다.
종교라고 해서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와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란 개인에게 헌신할 대상과 어떤 집단이 공유하는 사고 및 행동 규범을 포괄하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지만 고등동물일수록 본능보다는 이성과 행동규범에 따라 행동하려는 경향이 커집니다.
가장 고등한 동물인 인간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가장 적고 이성과 행동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가장 큽니다.
따라서 가장 고등한 동물인 인간은 행동규범을 제공해주는 종교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종교가 없다면 인간은 갈피를 못 잡고 목표를 향한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개인에게 돈이라는 헌신할 대상을 제공하고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관된 행동을 하도록 만듭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행동규범을 제공해주는 종교라고 볼 수 있고 현대문명은 자본주의 덕분에 이뤄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신자인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행동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많이 소유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부패하는 이유
자본주의의 광신도들
돈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사람은 자본주의의 광신도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지나치게 믿기 때문에 부패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 사건의 배경에는 항상 돈이 있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정치인이 공금을 횡령하고, 환자의 복지를 증진시켜야 하는 의사가 환자에게 과잉 치료를 권하고, 국가의 안녕을 책임져야 하는 공무원이 뇌물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행동규범을 생각 없이 따르는 사람은 극도로 잔인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잔인한 행동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이히만'입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들을 죽인 것은 그가 잔인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따랐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광신도들도 자본주의라는 행동규범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광신도들은 잔인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부패한 사람들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본주의의 광신도들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위해 살아라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자본주의의 대전제는 쾌락이 클수록 행복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는 돈을 통해 무언가를 구입하고 쾌락을 느끼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쾌락이 클수록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순간적인 쾌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적인 쾌락은 잠시 동안은 당신을 즐겁게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마약을 한다면 순간적인 쾌락을 느낄 수 있어도 그것이 당신을 오랫동안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마약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쾌락을 갈망하게 되기 때문에 불행해집니다.
따라서 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서 큰 집, 비싼 차, 명품 옷을 산다고 해도 당신은 순간적인 쾌락만 느낄 뿐 결국에는 더욱 불행해질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그것의 실현이 당신의 성장이 촉진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건전한 취미를 갖거나 누군가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순간적인 쾌락은 금세 사라져 버리지만 당신을 성장시키는 행동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당신에게 값진 경험으로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이제는 자본주의의 광신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겁니다.
자본주의 덕분에 현대 문명이 건설되었고 인류는 오늘날과 같은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때문에 사람들이 불행해졌다는 사실은 역설인 것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깨닫고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겁니다.
이 글은 에리히 프롬의 책, '소유냐 존재냐'를 기반으로 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당신도 이 책을 읽는다면 그동안의 생활양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의 습관을 개선하여 행복하게 사는데 도움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 글을 재밌게 읽었다면 책 '소유냐 존재냐'를 추천드립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이 책의 서평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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